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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연대기 (미국 이야기)

깊은 뿌리 : 북미 원주민의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

by 좋은_친구 202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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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역사는 15세기 말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유럽에서의 탐험, 식민화, 그리고 아메리칸 혁명으로 이어져 마침내 미국은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다. 1776 7 4일에 독립선언서가 탄생했고, 이후 1783년 파리 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기 이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역사도 이어지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문화

유럽인들의 이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북아메리카 본토의 원주민들은 주로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12,000여 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에 온 것으로 보이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집단은 진보한 농경과 건축을 통해 국가 수준의 사회를 이룩했고 북미 모든 지역에 걸쳐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에는 많은 부족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북미 원주민 문화'라고 말하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지고, 그렇기에 식민지 시대 이전의 역사는 짧게 정리하기 굉장히 어려워진다. 이들 문화는 공통적으로 고 인디언(Paleo-Indian, 혹은 Paleo-American) 문화에 기반을 두고 발달하였으며, 많은 문화권이 현재 미국과 캐나다 땅에 자리 잡고 있는 그레이트플레인스와 오대호 주변으로 발달하였고, 또한 서부 및 남부의 인접 지역에도 자리 잡았다. 이들은 공통으로 유사한 이야기의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미시시피호를 숭상 심하던 애니미즘 정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8천 년경에는 나 뒤네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구사하던 사람들이 태평양을 항해해서 북미 태평양 해안에 정착했다. 이들은 후에 애서배스카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그 후에는 아파치와 나바호족 등으로 분화되었다. 이들의 언어와 문화는 고 인디언 문화권을 필두로 생겨난 기존의 북미 원주민의 문화와 판이하였다.

 

선대 푸에블로 문화

기원전 12세기경부터 four corners(콜로라도 남서부, 유타 남동부, 애리조나 북동부, 뉴멕시코 북서부로 구성된 미국 남서부 지역) 일대에 정착한 선대 푸에블로 인들은 절벽에 대규모 도시를 건설하고 선대 푸에블로(아나사지) 문명을 형성하였다. 푸에블로(Pueblo)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스페인어로 '마을'이라는 뜻으로 우리 동네', 또는 '고향'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스페인인들이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을 뜻하는 스페인어 푸에블로에서 따서 이름을 붙였다.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이전의 미국 남서부 지역에는 모골론(Mogollon), 호호함(Hohokam), 선조 푸에블로(Anasazi)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현대의 푸에블로 인들은 이들의 후손이다.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전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며 발전했다. 이들은 옥수수, , 호박 등을 키우는 농경 생활을 했다. 특히, 선조 푸에블로인들은 9세기 때부터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해 대규모 건축물을 조성하고 포장도로를 까는 등 번영을 누렸지만, 12세기 들어 심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환경 파괴로 인해 대규모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지자 흩어졌다고 한다.

 

미시시피 문화

미시시피 문화(Mississippian culture)는 마운드(무덤 위에 주거 및 묘지 등을 건설하기 위해 쌓아 올린 인공 언덕)를 구축했던 미국 원주민 문명이다. 대략 800년부터 1500년까지 현재 미국 중서부, 동부 및 남동부에 흩어져 지역에 따라 나타났던 다양한 형태의 문화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로 볼 때 유럽의 청동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미시시피강을 중심으로 소규모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고, 외부와 교역하거나 장대한 건축물이 세워진 인구 수만 규모의 도시도 지니는 등 미시시피 문화는 북미에 뿌리내린 수많은 문화권 중에서 가장 찬란한 문명으로 손꼽힌다.

 

미시시피 문화의 생활양식은 미시시피 계곡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테네시강 계곡 지류의 문화도 당시 미시시피 문화의 성격을 갖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시시피 문화의 유적지 연대는 1539(스페인 탐험가 에르난도 데 소토가 탐사한 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 유적은 유럽 백인의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문화는 유럽 백인과 접촉 이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미시시피 문화에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많은 특징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운드로 이 시기의 사람들은 꼭대기가 없는 평평한 사다리꼴의 마운드를 쌓아 올렸다. 이 마운드의 대부분은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 모든 연 체 모양, 심지어 둥근 것도 있다. 구조물(주택, 사원, 묘지 등) 대부분은 마운드 꼭대기에 지어져 있다. 그리고 옥수수 농업을 기본으로 했는데 미시시피 문화의 발전 규모가 크고, 집중된 곳은 옥수수 농업을 채용한 시기와 일치한다. 조개껍데기를 매개체로 한 토기를 사용했고, 읍성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복합 읍성 국가를 구축하고 있었다. 교역도 활발해 서쪽으로는 로키산맥, 북쪽은 오대호, 남쪽으로는 멕시코만, 동쪽은 대서양까지 교역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현재 미시시피 사람들의 신앙 양식으로 알려진 남동부 제례 양식 또는 남부 컬트로 불리는 의식을 행하였다. 남부 컬트는 위스콘신주(아스타란 주립공원)에서 걸프 코스트 또한 플로리다에서 아칸소주와 오클라호마주에 걸쳐 발생했다. 이것은 시간, 청키(chunky)와 같은 의례적인 게임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청동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미시시피 문화에는 문자 체계뿐만 아니라 석조 건축물도 없었다. 자연적으로 수집된 금속 퇴적물을 가공할 수 있었지만, 구리와 철을 녹여 가공하는 제철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로쿼이 연맹

1142년경에는 온타리오 호수를 주변으로 하여 이로쿼이 연맹이 결성된다. 현대에는 프랑스어인 '이로쿼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졌지만 이로쿼이 연맹의 사람들은 본인의 부족연맹을 하루대노사우니(긴 집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렀다. 이로쿼이 연맹은 현재의 미국과 캐나다 영토에 걸쳐져 있었으며, 히아와타를 비롯하여 데가나위다(일명 중재자, Peacemaker), 지곤 사세 등의 평화주의적 지도자들이 비슷한 방언 수준으로 다른 언어를 쓸 뿐인 모호크족, 오나이다족, 오논다가족, 카유가족, 그리고 세네카 족이 모두 통일되어 평화로운 이웃사촌으로 살아야 한다며 구성한 일종의 연합부족 형태였다. 히아와타는 전쟁에 시달리는 이 다섯 부족의 국민을 위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며 연합을 이뤄냈고, 전쟁을 통한 공포 정치를 하던 모호크족의 지도자 타도 다호까지 설득해 내는 데 성공해 '대 평화 율법'을 선포함에 따라 다섯 부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다섯 부족이 연합되었기에 '오죽 연합(Five Nations)'이라고도 불리는데, 1722년 투스카로라 족이 가입해 잠시 '육족 연합(Six Nations)'이 되었었다. 일종의 연방제이자 양원제로 이루어져 있는 이로쿼이 연맹의 정치 체계는 굉장히 민주적이었으며, 수 세기 후 벤저민 프랭클린과 조지 워싱턴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직접 이로쿼이 연맹의 정치 체계를 배워 연구하였고, 이는 후에 완성되는 미국 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설에 따르면 모든 부족이 비무장하고 무기들을 모두 한 소나무 밑에 묻었는데,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소나무 위에 앉아 울부짖었고, 이를 본 데가 나위다가 "수리가 우리를 항상 지켜볼 것이며 위험한 상황에서는 소리 내 울어서 우리에게 알릴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상징이 흰머리수리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들은 남부의 경우 이곳에 상륙한 콩키스타도르들에 의해 쫓겨나기 시작했고 동부도 처음에는 영국인을 비롯한 여러 이주민과 공존을 꾀했으나 나중에는 이들도 스페인이 남미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부 학살당하거나 외진 곳으로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군과의 인디언 전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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